“제주 4·3 트라우마 치유는 불교의 의무”
“제주 4·3 트라우마 치유는 불교의 의무”
  • 서현욱
  • 승인 2018.03.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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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무 교수 ‘인민군 아버지와 여전히 모르는 사실’ 고백
16일 IBYE 2018 제주 4.3 70주년 국제합동 추모 학술제

“제주 4.3 희생자와 유족의 트라우마 치유는 사회 체계 차원의 사회 복원과 함께 국가폭력에 의해 발생한 일반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데 불교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불교계와 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10.27법난 기념관을 이러한 관심을 현실화하는 기관으로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 공업을 염두에 두고 4.3 사건과 관련된 모든 위령ㆍ기념활동은 사회가 불교에 거는 기대이자 불교 스스로가 자임해야 할 의무이다.”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는 2018 국제불교청소년교환캠프(International Buddhist Youth Exchange Korea 2018, 이하 IBYE) 이틀째인 16일 저녁 7시 30분 제주 서귀포 빠레브호텔 소연회실에서 열린 '제주 4.3 70주년 국제합동 추모 학술제'에서 이 같이 말했다. ‘제주 4.3 사건의 구조적 맥락과 역사 및 사회의 복원을 위한 몇 가지 제언’을 주제로 이날 발제에 나선 유 교수는 자신이 4·3 사건의 피해자임을 고백하고, 가족을 잃은 개인적 아픔을 바탕으로 4.3의 역사적, 사회적, 종교적 회복의 필요성을 모색했다.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 역시 ‘제주 4·3’의 역사청산 과제가 고스란히 남아있음을 지적했다. 이는 가해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누가 희생 당했는지, 구체적 진행과정, 재인적 사회적 후유증 등 핵심적 진실이 모두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승무 중앙승가대 교수.

책임자 처벌이 역사 청산의 시작

그는 “제주 4·3 사건의 진상규명 조차 충분하지 않다”며 “과거사는 어설프게 봉합하면 더 속으로 곪아 들어 가기 때문에 책임자 처벌, 피해(자) 배·보상 조치, 해원과 기념 등 ‘역사청산’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유 교수는 제주 4·3의 사회적 맥락을 통해 정치사회적 위상과 의미,구조적 맥락, 종교적 회복을 강조했다.

그는 제주 4.3사건을 사회적 맥락과 구조적 맥락으로 나눠 접근했다. 제주 4.3 사건 당시의 사회구조적 맥락을 밝혀 제주 4.3 사건을 구조적 맥락 속에서 이해했다. 구조적 맥락에서 보아야 제주 4.3 사건과 같은 국가폭력의 정치사회적 위상과 특징이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 구조적 맥락을 밝혀보기 위해 국가폭력을 정치체계의 과잉기능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로 루만의 사회적 체계이론을 원용했다.

유교수는 “그 발견의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일제, 소련)의 이해관계와 군대의 작동코드와 이승만 정부의 체제/환경-차이 구조와 군대식 작동코드가 당시 제주도의 이념갈등을 포함한 정치적 기능체계에 과잉 개입함으로써 제주 4.3 사건과 같은 집단학살이 발생했다”고 판단한다.

유 교수는 “한국사회의 과거사 청산 작업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지는 원칙이자 ‘제주 4.3 특별법’에서조차도 상대적으로 경시되어 왔다고 생각되는 원칙, 즉 책임자 처벌의 원칙, 재발방지의 원칙, 그리고 지속적 기억의 원칙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 각각을 역사의 복원, 사회의 복원, 종교적 복원과 연관시켜 논의”했다.

그는 제주 4.3 사건과 같은 국가폭력은 생명의 시효나 법적 공소시효를 넘어서서 역사적·사회적·종교적 복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제주 4·3 사건의 피해 유족이란 사실을 고백했다.

그의 가족사에서 제주 4·3은 ‘아직도 전혀 모르는 사건’이다. ‘지워진 사실’과 ‘지워지지 않는 사실’이 혼재돼 가족과 자신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 지 ‘여전히 모르는 것’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2018 국제불교청소년교환캠프(International Buddhist Youth Exchange Korea 2018, 이하 IBYE) 이틀째인 16일 저녁 7시 30분 제주 서귀포 빠레브호텔 소연회실에서 열린 '제주 4.3 70주년 국제합동 추모 학술제'.

"아버지는 한 때 인민군 위원장…여전히 모르는 사실"

그는 우선 “한때 부친은 인민군 위원장 활동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에게 아버지의 일은 ‘지워버린 사실’이었다.

유 교수는 “상해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지낸 이상룡 선생 집 임청각 뒷산에서 그 집으로부터 몰래 밥을 얻어먹으면서 토굴생활을 하는 과정에 ‘누이 2명’이 죽었다”면서 “내 생애 가장 슬프고 고통스럽게 대면하는 일임에도, 아직도 그 어떤 사실도 확인할 수도 없었고 해 볼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모님과 연루된 사건으로 인해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막대한 경제적·사회적·심리적 손실이 이따금씩 나의 내부에서 알지 못할 분노로 폭발했다”며 “그와 관련된 모든 사실은 아직도 저 어두운 상상의 ‘감방’ 속에 묻혀 있다”고 했다. ‘인민군’이면 안 되던 시절의 아버지, ‘영남 양반 출신의 항일운동가 자손’이자 사회주의와 아나키즘의 바람이 불던 보성고등학교 출신의 아버지가 대체 어떤 과정에서 ‘인민군 위원장’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연약했던 셋째와 넷째 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사실이 지워졌다. 그런 까닭에 나는 아직도 부모님께서 왜 산속에서 게릴라 생활을 해야 했는지, 그 삶과 누이의 죽음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리고 그 사실과 그 이후 우리 가족 혹은 나의 삶은 또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관해 나는 ‘아직도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다고 유 교수는 고백했다.

유 교수는 “경험에 비추어볼 때, 제주 4.3 사건 역시 희생자와 유족의 범위를 법적으로 정하고 그들에게 배ㆍ보상을 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며 “법적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생생하게 남아 있음을 가슴으로 확인한다. 이것이 4.3 사건의 법적 해결을 넘어 사회적ㆍ역사적ㆍ종교적 회복을 주장하는 까닭”이라고 설명했다.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이 역사적 회복‘ 방법임을 강조했다. 유 교수는 “제주 4.3 특별법 그 어디에도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한 법적 근거나 활동의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당대 한국사회의 결정적 의사결정의 주체였던 미군정, 근대 한국사회의 기형적 정치질서의 제1원인 제공자인 일본 제국주의에 4.3 사건의 가장 큰 책임이 존재한다. 이러한 책임당사자가 한국사회에서 자행한 각종 범죄에 대해 역사적으로 철저하게 단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4.3 학살의 직접적 가해자인 정부와 군·경에도 책임을 물었다. 유 교수는 “이승만 정부와 국가기구인 군대 및 경찰이 4.3 사건의 가해자였다는 사실 그 자체가 국가가 처벌 대상임을 실증한다”면서 “국가는 그 폭력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반드시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한 국민적 합의가 수반되어야 한다”고 했다.

'제주 4.3 70주년 국제합동 추모 학술제'에 참석한 덴퐁 수완나카아롭 세계불교청년우의회장과 전준호 부회장

지워진 사실과 지워지지 않는 사실, 그리고 여전히 모르는 사실들

그러면서 “제주 4.3 사건이 대한민국 국가에 의해 자행된 최초의 국가폭력이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국가가 최소한 지금부터라도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폭력독점기구의 정치적 개입에 대해 가차 없이 단죄해야 한다”면서 “당대의 결정적인 역사적 인물과 그들의 활동에 대한 역사적 처벌도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역사적 회복에 이어 유 교수는 사회적 회복을 위해 ‘재방 방지’를 원칙으로 꼽았다. 그는 “제주 4.3 사건과 같은 국가폭력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구체적 조치는 정치사회의 민주화”라며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정치사회의 민주화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매우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회는 이미 그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유 교수는 “다만 아직도 권위주의적 태도나 강압 등 비민주적인 관행이 남아있는 것 또한 사실”이라며 “사회체계의 합리성이 보다 강화될수록 그만큼 폭력의 재발은 억제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의 고통을 해소하고 그들을 원상회복하는 것은, 다른 국가기관이 아니라 바로 법체계의 관찰 프로그램인 사법부 자체의 노력에 의해 행해져야 한다”며 “희생자나 유족의 트라우마 치유와 관련된 활동도 국가가 책임을 져야 마땅한데, 다행히 ‘제주 4.3 특별법’ 제 28조(공동체 회복 프로그램의 개발·시행 등)에는 이에 대한 법적 규정이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했다.

제주4.3 해결에서 역사적 사회적 복원을 강조한 유 교수는 종교적 복원이 최종단계로 꼽았다. 그는 “복원은 ‘원상태로 회복한다’는 의미다. 사회가 충분히 복원되기 위해서는 생활세계가 복원되어야 하는데 이는 합리적 기획보다는 집합적 열광과 같은 감동적이고 정서적 방식으로 복원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며 “그러한 점에서 합리를 초월하는 종교적 레시피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넓게는 생활세계의 복원, 좁게는 종교적 복원을 위한 불교에 대한 사회적 기대가 적지 않다”면서 “무엇보다 불교는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관심의 폭을 불교계에 한정하지 말고 중중무진의 연기라는 관점에서 생명계 일반으로 확장해야 한다. 그럴 때 당대의 사회 구조적 모순은 물론 오늘날의 모순구조도 시야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들에게 제주 관음사 창건 유래와 제주 4.3을 설명하는 허운 스님.

10.27법난 기념관 건립사업’의 확장 운용 제안

유 교수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조계종에서 추진 중인 ‘10.27법난 기념관 건립사업’의 확장 운용을 제안했다. 그는 “불교는 제주 4.3 사건과 관련된 트라우마는 물론 국가폭력에 의해 발생한 현대인 일반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활동에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불교계와 국가가 건립 추진 중인 10.27법난 기념관을 이러한 관심을 현실화하는 기관으로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보았다.

그는 “불교의 공업을 염두에 두고 4.3 사건과 관련된 모든 위령ㆍ기념활동은 사회가 불교에 거는 기대이자 불교 스스로가 자임해야 할 의무”라고 당부했다.

유 교수는 “모친의 가슴에 사무친 상처를 추체험해 볼 때 이미 난 상처를 사후에 원상회복하기란 무척 어렵고 힘들 것”이라며 “일제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국가 대한민국에 의한 국가폭력의 경우 원상회복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사건 때문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삶을 그 누가 어떻게 원상회복할 수 있단 말인가”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구조가 아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뿐”이라고 했다.

참가자들은 4.3 당시 주민 443명이 학살당한 북촌리 너븐숭이에 자리잡은 4.3 기념관을 순례했다.이곳에는 위령비와 각명비, 북촌리 4.3을 다룬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을 기리는 순이삼촌비, 4.3과 같은 액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주민들이 세운 방사탑, 어린이들이 임시 매장된 애기무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집단학살에 대한 성찰과 공동체 복원’을 주제로 한 제주 4·3 7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김보성 제주불교청년회장의 사회로 이도흠 한양대 교수가 ‘제주 4.3 민중항쟁에서 폭력의 양상과 공동체 복원 방안’,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가 ‘폭력의 극복과 평화를 위한 불교윤리적 지혜’, WFBY 부회장 료소 쇼지스님이 ‘다르마에 따른 현대 세계의 평화’를 각각 발표했다.

앞서6일 대회 둘째 날인 16일 IBYE 참가자들은 약천사에서 아침 예불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이어 정방사·무량정사·관음사를 참배했다. 관음사 주지 허운 스님은 IBYE 참가자들을 환영하며 관음사가 비구니 스님이 창건하고 제주 4·3 사건 당시 피해의 중심에 있던 과거사를 설명했다. 관음사가 준비한 점심식사를 마친 참가자들은 북촌리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순례했다. 북촌리는 제주 조천읍 동쪽 끝에 자리잡은 해변마을로 4.3 당시 주민 443명이 학살당한 곳이다. 기념관 주변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위령비와 각명비, 북촌리 4.3을 다룬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을 기리는 순이삼촌비, 4.3과 같은 액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며 주민들이 세운 방사탑, 어린이들이 임시 매장된 애기무덤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제보 mytrea70@gmail.com]

[뉴스렙=서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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